[책_부자의 그릇에서] 

요식업

같은 프랜차이즈라도 지점에 따라 매출에 큰 차이가 난다(입지조건, 업태, 메뉴의 조합에 따라 어느정도 매출의 예측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A라는 입지는 임대료는 비싸지만 통행인들이 많아 매출만으로 충분히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다.

B라는 입지는 주택가로 임대료가 낮지만 단가가 낮은 메뉴만으로는 이익이 나지 않는다. 

 

형태에 따라 테이크아웃형, 서비스 제공형으로 나눈다. 

테이크 아웃형은 진열 케이스와 대면 판매가 가능한 공간만 있으면 되므로 인건비와 임대료를 줄일 수 있따. 

서비스 제공형은 점내에서 식음서비스를 제공해야하므로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고 직원이 더 필요하며, 초기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창업초기 능력있는 인재를 스카우트 할 때 조건 :  기본급을 낮게 책정하는 대신 매출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조건 

 

메뉴개발, 실험  (***시간을 많이 들여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 낸다!) 

동종업계 타사 조사 (영업 방식, 위치, 맛, 등) 

주요 구매층 조사 (타사 가게 앞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지켜보며 파악하기)_고객층의 성별, 나이, 가격, 판매수량, 고객방문 시간 등 

  *이것도 가게의 위치에 따라 고객층 및 판매되는 상품가격이 달라지므로 여러곳 조사해야함. 

  *꼭 동종 업계가 아니라도 내가 타겟으로 하는 비슷한 위치의 다른 업종, 또는 유사업종도 함께 조사

 

매장 구하기

 

첫달의 매출 목표 정하기 

예 월/1000만원으로 설정했다면 제품 단가 (2500원 주먹밥)을 몇개 팔아야 한는지 계산 : 4000개 이상 팔아야하며, 하루에 133개 이상씩 팔아야하고, 아침 8시부터 저녁8시까지 영업한다면 시간당 11개씩은 팔아야한다. 

비용에서 보면 첫달은 적자가 좀 나더나로 첫달은 하는 수 없다. 

원가율(일정 기간의 매상고에 대한 매상 원가의 비율)은 35%로 잡았는데 이것은 평균치이다. 원가율을 조금 초과하는 40%정도인 인기메뉴를 둘 수도 있다. 그리고 원가율이 낮은 메뉴와 함께 판매하는 것이다. 

 

개업초기에는 매출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 투자와 발주는 신중하게 하도록 한다. 

모든 가게는 고객이 제로인 상태에서 출발하므로 수개월에서 1년까지는 적자만 난다는 '죽음의 계곡(창업 후 다음 단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좌절을 겪는 상황전반'

 

홍보와 마케팅: 방송촬영 등의 취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취재가 온다면 방송전 대기하는 손님들의 줄을 연출해서라도 꾸미기 (방송의 힘)그러나 미디어 효과는 한달이면 끝난다. 

잘팔린다면 그 기회를 살려 2호점을 낼 수도 있다. 은행융자를 잘 받는다. 최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2호점을 내어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먹는 장사는 한번 대박이 나면 수익이 엄청나다. 

 

 

 

 

 

 

I don't mind what happens. 

 

[Profile] 명상가, 철학가, 강연가 

인도출생, 신지학협회에서 '세계의 교사로 발탁'되었으나, 별의 제단을 해체하고 60년간 독자적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 

 

[Organization] https://www.jkrishnamurti.org/

 

Homepage | J. Krishnamurti

To free the mind from all conditioning, you must see the totality of it without thought. This is...

www.jkrishnamurti.org

[Publication] 

 

           
  • Education and the Significance of Life- by Jiddu Krishnamurti
  • This Light in Oneself ; True Meditation - by Jiddu Krishnamurti
  • This matter of culture
  • The Only Revolution
  • The Urgency of Change
  • Life Ahead by Jiddu Krishnamurti
  • A timeless spring : Krishnamurti at Rajghat
  • Beginnings of Learning by Jiddu Krishnamurti
  • Letters of the school
  • You Are the World ; Authentic Reports of Talks and Discussions in American Universities
  • What Are You Doing With Your Life? : Teen Books on Living Series
  • Why are you being educated?(Talks With American Students by j. krishnamurti, 1970)
  • The First and Last Freedom by Jiddu Krishnamurti, Aldous Huxley
  • Beyond Violence by Jiddu Krishnamurti
  • Commentaries on Living : First Series by Jiddu Krishnamurti (1989)
  • Commentaries on Living : Second Series by Jiddu Krishnamurti
  • Commentaries on Living : Third Series by Jiddu Krishnamurti
  • Tradition and Revolution, ed. by Pupul Jayaker and Sunanda Patwardhan(Chennai : Krishnamurti Foundation India, 1972)
  • Krishnamurti to Himself : His Last Journal (San Francisco : Harper & Row, 1987)
  • The Network of Thought ( San Francisco : Harper & Row, 1982)
  • Last Talks at Saanen 1985, photographs by Mark Edwards (San Francisco : Harper & Row, 1985)
  • Things of The Mind : Dialogues with J. Krishnamurti (New York : Philosophical Library, 1985)
  • The impossible Question ( San Francisco : Harper & Row, 1972)
  • Second Penguin Krishnamurti Reader, ed. by Mary Lutyens (1970)
  • Krishnamurti's Notebook (Madras : Krishnamurti Foundation India, 1976)
  • Truth and Actuality
  • Exploration Into Insight
  • The Awakening of Intelligence (Harer SanFrancisco, 1973)
  • The Wholeness of Life
  • From darkness of light
  • The Ending of Time (with Dr. David Bohm)
  • The Future is Now
  • The Future of hummanity, Krishnamurti and Bohm
  • The Book of Life
  • Saying of J. Krishnamurti (1986)
  • Flame of Attention
  • The Network of Thought
  • Krishnamurti's Journal
  • Poms & Parables (1981)
  • The Wholly Different Way of Living (with Professor Allan W Anderson)

한국판

  • j. 크리슈나무르티, 굴레에서 해방을(敎育寶鑑), 1982. 심설당(Harper & Row, Education and the Significance of Life 1981)
  • 자유의 갈망 (진화당, 편충우, 1984)
  • 벌거벗은자와 동행하고 싶다 (혜서원, 정상진, 1991)
  • 명상공간(한마음, 이희구, 1984) The impossible question Vitor Gollancz Ltd 1972
  • 명상, 삶의 몇 가지 비밀 (동화문학, 김영, 1991)
  • 아는것으로부터의 자유 (보성출판, 이현복, 1992) Fredom from the known
  • 베란다에서 바다로 떠나다 (진화, 김현묵, 1991) Poems & Parables   1981
  • 삶과 지성에 대하여 (학원사, 이윤기, 1992)
  • 시간의 종말 (고려원, 성장현, 1994) The ending of time
  • 자유를 찾아 방랑하는 성자 (문조사,1990)
  • 고뇌하는 그대 가슴 속에만 (참빛, 명예량, 1990)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정우사, 정종현, 1979) Freedom from the known Harper & Row
  • 마지막 일기 (책세상, 김동림, 1989)
  • 사랑보다 소중한 삶의 의미 (가림, 최윤영, 1994)
  • 사랑하는 사람 오직 그만이 혁명적 (예문각,1991)
  • 지성과 자아의 계단 (동화문학,1987)
  • 삶의 진실에 대하여 (까치, 이병기, 1982)
  • 자기로부터의 혁명 (고려문학, 현기용, 1991)
  • 나도비고 너도비고 (덕성문화, 윤시원, 1991)
  • 우리 자신 속의 독재자 (명상, 박상준, 1988) Last Talks at Saanen Vitor Gollancz Ltd 1985
  • 나는 또 하나의 너 (햇살, 이성규, 1989)
  • 사랑 할수록 아름답습니다 (가람문학, 정용택, 1990)
  • 삶의 진실을 찾아서 (홍신문화, 최봉식, 1989)
  • 그대 내게로 와서 우리 다시 사랑 (백만인, 김대규, 1990)
  • 명상의 언덕을 넘어서 (준, 조항래, 1990) The only revolution, Urgency of change
  • 관심의 불꽃 (범우사, 강옥구, 1987)
  • 혼자서 가야만 하리라 (백상, 김정우, 1990) Say of J. Krishnamurti   1986
  •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행복하다 (영언문화, 김정우, 1990)
  • 자기로부터의 혁명1 (범우사, 권동수, 1982) The first & last freedom Vitor Gollancz Ltd 1957
  • 자기로부터의 혁명2 (범우사, 권동수, 1982) The first & last freedom Vitor Gollancz Ltd
  • 자기로부터의 혁명3 (범우사, 권동수, 1982) The first & last freedom Vitor Gollancz Ltd
  • 나의삶을 찾아서 (학일출판, 이종관, 1988)
  • 어떻게 사느냐 묻거든 (선영사, 이종관, 1985)
  •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1 (창하, 안정효, 1980)
  •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2 (창하, 안정효, 1980)
  •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3 (창하, 안정효, 1980)
  • 독수리 비상 (기지개, 류종열, 1992)
  • 삶의 수업 (기지개, 류종열, 1992)
  • 바람처럼 물결처럼 (김영사, 류시화, 1983) On education, Onlyrevolution Harper & Row
  • 생애와 사상:별의 교단 해체까지 (정신세계, 류시화, 1985) The yeard of awakening Mary Ltyens
  • 시간의 벽을 넘어서 (문화출판, 이용호, 1988)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문화출판, 이용호, 1991)
  • 시간의 끝에 서서 (동아,1987)
  •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동아,1983)
  • 고개숙인 성자 (세종출판,1991)

[Profile] 시를 쓰는 도예가, 영성가, 작가

 

[Company/Organization/Channel] http://rupertspira.com/

 

Rupert Spira

 

rupertspira.com

Youtube @rupertspira 

 

[Publication] 

           
  • The Transparency of Things, Non-Duality Press, 2008
  • Presence: The Art of Peace and Happiness, Non-Duality Press, 2011
  • Presence: The Intimacy of all Experience, Non-Duality Press, 2011
  • The Ashes of Love, Sahaja Publications, 2016
  • The Nature of Consciousness, Sahaja Publications, 2017
  • Being Aware of Being Aware, Sahaja Publications, 2017
  • A Meditation on I Am, New Harbinger, 2021
  • The Essential Self, Sahaja Publications, 2021
  • Being Myself, Sahaja Publications, 2021[12]
  • You Are the Happiness You Seek, Sahaja Publications, 2022

다음은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_ 루퍼트 스파이라 저/  책을 요약한 글입니다. 

 

Being aware of being aware 

 

[서문]

 

내면으로 향하는 길

진정한 평온함과 행복이란, 마음이 외적인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향하도록 해야, 즉 마음의 본성을 탐구해야만 얻을 수 있다. 

어떠한 신이나, 스승, 만트라, 호흡훈련등에 집중하는 기존의 종교적, 영적 수행은 모두 대상적 경험에 불과하다. 

대상적 경험의 내용으로 부터 벗어나 그 대상적 경험의 근간을 이루는 원천이나 본질로 마음이 향하도록 하는 것이 명상이나 기도의 본질이다. 

스스로를 기억하고 (자기기억self-remembering), 스스로를 탐구하고 (자기 탐구self-enquiry), 스스로를 지켜가는 (자기준수self-abidiance)길, 즉 굴복*의 길 (surrender path)이 바로 내면으로 향하는 직접적인 길(direct path)이다. 

마음의 알아차림이 자신의 본질을 향할때, 마음은 점진적으로 또는 갑자기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며, 그럼으로서 지금까지 대상적 경험속에서 찾아 헤매던 평온함과 행복이 바로 자신의 모습임을 발견하게 된다. 즉 평온함과 행복은 마음 그 자체의 본성, 우리의 본성이다. 

그리하여, 지속적인 평온함과 행복은 늘 우리 안에 잇으며, 누구든지,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모든 위대한 종교와 영적인 전통들이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굴복이란, 패배해서 항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을 열고 모든 것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집착도, 거부도 하지 않는 것이며, 모든 것을 저항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이다. 

 

행복이 드러나는 순간은 마치 잿빛 구름 사이로 파란 조각하늘이 살짝 드러나는 것과도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그저 불만족이라는 구름이 잠시 없어진 일시적인 상태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생각, 느낌, 감각, 지각의 여러 층위를 뚫고 내려가 마음의 본래 모습을 깊이 탐구해 본다면, 우리 마음의 본질적이고도 환원 불가능한 실체, 즉 파란 하늘과도 같은 평온함과 온전한 충족을 발견하게 된다. 

즉 행복이란 불행과 더불어 번갈아 일어나는 일시적인 경험이 아니며, 우리 내면에 항상 존재하는 우리의 본성이며,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우리 자신의 핵심에 존재하고 있다. 행복은 획득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드러나는 것이다. 

 

가장 깊고 본질적인 평온함과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에 집중하고, 마음을 관찰하는 명상은, 쉽게 대상적 경험으로만 향하기 마련인 마음의 주위를 내면으로 향하도록 하여 스스로의 본래적이고도 실체적인 모습을 발견하고자 하는 길이며 곧 직접적인 길(direct path) 이다. 내면을 찾는 모색에 관련된 철학, 그리고 구체적인 수행방법은 베단타(Vedanta)철학에서 정교히 설명되고 있다. 

 

깨달음과 대상적 경험의 재통합 

그러나 '내면으로 향하는 길'이란 전체 여정의 절반에 불과하다. 일단 마음의 본성을 깨닫고, 내재된 평온과 무조건적인 기쁨에 접근할 수 있게 된 다음에는, 외부세계에 대한 대상적 경험으로 우리의 주의를 돌려 우리가 새로이 얻은 내면의 이해를 토대로, 그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관계를 맺는 모든 방식을 재구성해야한다. 내면으로 향하는 길의 정점, 즉 모든 지식과 경험을 초월하는 알아차림 그 자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사물과 실체의 존재의 유일한 근원이 알아차림임을 깨닫고, 그것이 모든 것에 내재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깨달음과 우리의 대상적 경험을 통합해 내지 못한다면, 이 순수한 알아차림의 본성과 다른 모든 사물들과의 관련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세상속에서의 체화된 삶을 부정하거나, 거부하게 되고, 결국 개별적 자아라는 도피처로 계속 되돌아 올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에 관하여는 탄트라(Tantra) 철학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참고문헌: [투명한 몸, 빛나는 세상: 감각과 지각의 탄트라 요가 (Transparent body, luminous world; the Tantric Yoga of sensation and perception] 사하자Sahaja 출판사, [의식의 본질: 마음과 물질의 통일성에 대하여(The nature of Consciousness; Essays on the Unity of Mind and Matter) 사하자 Sahaja, 뉴하빈New Harbinger출판사 ) 

 

[1장]  알아차리기

알아차리기와 경험의 관계는 마치 영화관에서의 스크린과 영상의 관계와 비슷하다.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있는 스크린은 자기 자신 위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 알아차리기는 우리안에 숨겨져 있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의 뒤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배경과 같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는 영화의 내용에 빠져 스크린 그 자체를 간과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경험의 대상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에 알아차림 그 자체를 대개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알아차림은 경험의 조건이나 질에 좌우하지 않고, 모든 경험 속에서 똑같이 빛나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이며, 경험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알아차림을 경험의 전면으로 나오게 하고, 생각, 이미지, 느낌, 감각, 지각이 배경으로 물러서게 함으로서 순수한 알아차림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라. 바로 거기에 평온함과 행복이 있다. 

깨달음, 자각, 알아차림은 힘들게 수련하거나 오래 명상함으로서 성취할 수 있는 특수한 경험이나 상태가 아니다. 그저 마음의 본성 그 자체를 인지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알아차리기를 경험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안다는 경험을 아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내가 알아차리는 것을 아는 자는 누구인가? 

내가 알아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자는 분명히 '나'이며, 나는 즉 알아차림이다. 나는 '알아차린다'라는 경험은 알아차림의 자기자신에 대한 앎이며 알아차림이 스스로를 아는 데에는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2장] 알아차림의 본질 

- 영화의 내용 때문에 스크린 자체가 요동치는 일이 없는 것처럼, 알아차림 그 자체가 경험의 내용에 따라 영향을 받는 일도 없다. 

순수한 알아차림은 대상을 통한 경험으로 인한 어떤 것에도 동요하지 않는 본질적인 평온함,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평온함이다.  알아차리기는 경험에서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경험으로 부터 아무것도 얻지 않으며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자체로 온전하며 완전하고 충족되어 있다. 즉 알아차림의 본질이란 마음, 몸, 세계의 상태에 좌우되지 않는 모든 조건, 상태, 환경으로 부터의 자유로운 행복이다.

-스크린은 영화속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완전히 무방비 상태(utterly defenceless)이다. 하지만 스크린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스크린은 절대로 파괴되지 않는 것처럼, 알아차림 또한 모든 경험에 대해 완전히 열려있고 무방비 상태이지만, 결코 해를 입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영화속 인물이 태어날 때 스크린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영화속 인물이 늙거나 죽어도 스크린은 늙거나 죽지 않는 것 처럼, 몸이 생기거나 태어날때 알아차림이 태어나거나, 몸이 늙거나 죽을 때 알아차림도 함께 늙거나 죽는 것이 아니다. 알아차림은 스스로의 등장과 사라짐, 시작과 끝, 탄생과 죽음을 결코 경험하지 않는다. 

결국 알아차림에는 결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3장] 우리 본질의 핵심을 살펴보다 

알아차림이란 주의 집중을 이완시키고 대상적 경험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주의를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하고 쉬게 하는 것이다. 명상은 마음(한정된 알아차림)에 의해 이루어지는 어떤 정신적인 활동이 아니고, 오히려 마음이 스스로의 원천이자 본성인 순수한 알아차림으로 되돌아가고, 쉬고, 침잠하는 것이다. 

개별적인 자아는 무한한 알아차림이 눌려서 찌그러지고 제한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언제든 원래의 편안하게 이완된 본연의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하며, 이렇게 되돌아가려는 힘이 바로 행복을 향한 열망, 신을 향한 갈망이다. 

 

[4장] 뒤엉킨 알아차림 풀어헤치기 

유한한 마음은 제한되지 않은 알아차림의 변형된 형태이지만, 무한한 알아차림을 결코 알 수 없다. 

알아차림의 활동이 곧 마음이며, 마음은 알아차림이 움직이는 것, 알아차림은 마음이 쉬는 것이다. 명상은 알아차림을 스스로의 활동(마음)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다. 비활동, 비실천으로서의 명상을 통하여 마음의 활동을 가라앉힐 수 있다. 그러면 알아차림이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마음을 대상이 없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으며, 마음이 이처럼 대상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때, 이완되고 가라앉으며(sinking the mind into the heart_라마나 마하리쉬) 자신의 원천인 알아차림으로 되돌아간다. 

 

[5장] 애쓰지 않는 길 

명상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다. 마음을 어딘가로 향하게 할 필요도 없고, 마음을 집중하거나 통제할 필요도 없이 그저 알아차릴 뿐이다. 지금까지 주먹(개별적자아, 에고)을 쥐고 있느라 계속 애를 쓰고 있던 것이지, 손을 펴기 위해서 새롭게 애를 써야하는 것이 아니다. 알아차림 상태에 머무는 것, 애쓰지 않는 존재가 우리의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모든 의도적인 노력을 다 놓아버릴 때 순수한 알아차림의 상태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따. 

 

[6장] 내면으로 향하는 길 

"나는 신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나 자신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신을 발견했다" _ 수피격언

"스스로를 아는 자는 신을 안다" _ 발리아니 

"나는 신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결국 다 포기하고 되돌아왔을때, 신은 바로 거기에, 내 안에 있었다_Lalla

우리는 언제나 대상_ 물질, 활동, 마음상태, 인간관계속에서 평온과 만족감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간혹 원하는 것을 얻거나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찾아헤매기를 멈추게 되고, 이러한 멈춤 덕분에 잠시나마 평온과 만족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으므로, 다시 찾아헤매는 여정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포기하고 돌아설 때', 즉 대상적인 경험에서 평온과 만족을 찾아헤매는 것을 멈출 때, 그리하여 방향이 없는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고, 마음의 근원인 알아차림의 중심으로 더 깊이 가라앉을 때, 이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평생 갈망해온 영원한 평온함과 만족감을 맛보게 된다. 

 

[7장] 영광의 구름을 이끌고 나아가다

괴로워 한다는 것은 곧 대상적 경험안에서 끊임없이 행복을 찾으려 애쓴다는 뜻이다. 또한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은 결국 대상적 경험에 불과한 것으로, 알아차림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그런 다양한 마음을 조용히 알아차릴 뿐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일도 없고, 싫어하는 일도 없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개의치도 않고 신경쓰지도 않는다. 그래서 늘 평온하고 행복하다. 

우리가 생각, 감정, 감각, 지각에 더 이상 이끌리지 않게 되었을 때, 개별적 자아, 에고에 어디상 이끌리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의 진정한 본질에 안착할 수 있다. 

 

[8장] 알아차림의 바다

알아차림을 바다에 비유하자면 생각은 수면에서 움직이는 파도, 느낌은 그 밑에서 흐르는 해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파도와 해류가 바다의 움직임이라고 부를 수 있듯이, 마음 (생각, 느낌)은 알아차림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닷속 깊은 곳은 언제나 고요하다. 파도나 해류가 바닷속 깊은 곳을 향해 아래로 아래로 흐르게 되면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넓어지다가 언젠가 움직임을 멈추게 된다. 활동이나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파도나 해류는 자신의 형태를 잃게 되며, 그 결과 자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처럼 마음은 자신의 본질로 점차 가라앉으면서 고요해지고 넓어진다. 그리고 명료하고 빛나는, 고요한 알아차림속으로 참잠한다. 

 

 

 

돈은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다

[1장]

선택 _ 충동적이고 섣부른 판단은 아닌가? 정말로 물건의 장단점을 보고 골랐는가? 

           (사람들은 중고나 구형이 되어 싸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돈을 더 지불하는 선택을 한다) 

           인간이 돈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 중 대부분은 잘못된 타이밍과 선택으로 인해 일어난다. 

경험 _ 돈을 다루는 능력은 키웠는가? 

          사람마다 돈 그릇이 다르다.  인간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돈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돈을 다루는 능력은 많이 다루는 경험을 통해서만 키울 수 있다. 처음에는 작게, 그러나 점점 크게. 

신용 _ 돈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돈은 우리의 신용도이다. 남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가 우리의 통장에 나타난다. 

          돈은 남으로 부터 오는 것이므로, 부자는 반드시 약속을 지켜 신용을 얻고자 한다. 신용이 있으면 돈이 먼저 다가온다. 

          반면,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신용도 얻지 못한다. 상대를 믿지 않으면 상대도 우리를 믿지 않는다.

         신뢰하는 사람, 신뢰받는 사람은 언제나 동일한 계층에 있으며, 같은 의미로 속이는 사람, 속는 사람도 동일한 계층에 있다. 

리스크 _ 부자는 돈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할까? 

             부자들이 생각하는 리스크란 '돈이 늘지 않는 리스크'이다. 

             한정된 기회를 나의 것으로 만들려면 배트를 많이 휘둘러야한다.

             헛스윙을 무서워하지 마라. 배트를 많이 휘둘러야 볼을 맞힐 수 있고, 그래야 홈런도 날릴 수 있다. 

             빨리 시작하라 (도전이 늦어지면 실패를 만회할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하라. (사업을 시작하면 생활이 온통 그것 중심이 되기 때문에) 

 

[2장] 부자의 고백

기회 _ 무엇을 하느냐 보다 누구와 하느냐를 따진다. 

부채 _ 빚만큼 돈을 배우는데 좋은 교재는 없다. 

          빚이란, 사람에 따라서는 계속 얻는 편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빚이라면 무조건 싫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회사가 문을 닫거나 개인이 자기 파산하는 원인은 빚 때문이 아닌, 수중에 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은 실패를 빚 탓으로 돌리고 빚을 싫어한 나머지 빚을 통해 돈의 성질에 대해 배울 기회까지 잃고 있다.

          빚은 결코 나쁜 게 아니며, 부채와 금리를 잘만 다루면 오히려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된다. 

 

          빚은 대차대조표상, 대변(우측)부분, 장부상으로는 매달 일정한 지출액이다. 부채금액은 균형을 보고 정하고,

          금리는 그 돈을 조달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합리적이다. (즉, 부채는 재료, 금리는 조달비용

          도산을 면하기 위해서 매년 300만원을 지불하고 1억원의 현금 준비금을 빌려두는 것은 현명한 경영방식이다.

          즉 1억원이 자금부족을 막기 위해 빌리고 있는 돈이라면, 이것은 보험과도 같은 것으로, 이때의 금리는 회사가

          도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환급되지 않는 보험료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소유 _ 누구도 돈을 영원히 가지고 있을 순 없다

          부자들은 돈을 소유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떄문에 일정한 규칙에 따라 사용한다. 

          소유할 수 없는 돈을 쓰려면 우리는 '신용' 그리고 '가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A가 B에게 돈을 빌려줬다면 B는 A에게 금리를 지불하고 다음과 같은 2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 1.  그 빌린 돈을 C에게 더 높은 금리로 빌려주고 그 금리의 차액을 이익으로 취한다. 

           -> 2. D라는 물건을 산다. (이 선택이 부자와 빈자를 가른다) 왜냐하면 

                  부자는 C에게 돈을 빌려줬을 때와 받는 금리와 같은 효과를 D로부터 얻는다. (산 뒤에 가격상승/새로운 가치 창출)

                  빈자는 돈을 물건으로 바꿔 그것을 소유하는데에 얽매인다. 

 

         가치란, 사용가치(개인의 가치관에 따름), 교환가치(시장에 내놓았을 때 가격)의 두 종류가 있다. 

         부자들은 지금은 가격이 낮아도 가치가 있어서 언젠가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산다. 

         즉, 가치를 분별하는 힘, 즉  상대방이나 물건을 신용할 수 있는지를 분별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빚과 투자는 돈을 빌려준다는 측면에서 같으나 빚은 계약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반제액이 정해진 것이고,

        투자는 반제액에 상한이 없는 것이다. 

        투자를 결정할 때 사업의 장래성, 이윤의 크기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바로 신용이다. 신용이 돈을 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신용을 판단하는가? 바로 투자 대상의 지난 '경력'이다 이른바 은행에서의 '여신'이다. 

        그 사람의 과거, 즉 '어떻게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고 결과를 내왔는냐' 가 더 중요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어도 괜찮다.

        스스로 곰곰히 잘 생각하고 실행하는 경험이 곧 신용이 된다. 

 

계획 _  그릇을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을 아끼지 마라. 

           최고의 상품을 만드는데, 또는 내가 최고의 상품이 되는데 들이는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장사 _ 사람들은 필요할 때와 갖고 싶을 때 돈을 쓴다. 

가격 _ 눈앞의 이익이냐 브랜드 가치냐

오판 _ 돈만 좇다가 놓친 것은 없는가? 

           결국 너무도 쉽게 사업이 성장하고 큰 돈을 다루게 될 수록, 초심을 잃고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며 오만해진다. 

 

[3장] 부자의 유언 

파멸 _ 톱니바퀴가 어듯나면 망하는 건 순식간이다. 

도산 _ 꿈에서 깨어나 차가운 현실로 

그릇 _ 돈은 그만한 그릇을 지닌 사람에게 모인다. 

          돈에 관한 경험은 돈을 다뤄봐야만 쌓이는 것이다.

         1억원을 토대로 판단을 내려썬 경험은 1억원의 그릇이 되어서 내 속에 남는다. 

          돈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가져오며 돈은 세상을 순환하는 흐름이다.

          흘러가는 물을 일시적으로 소유할 수 있어도 그 것을 언제까지나 소유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부자는 돈을 반드시 누군가에게 맡기거나, 빌려주거나 투자하려고 하며 이때 누구를 선택하느냐가 관건이다. 

사람 _ 돈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주변부터 돌아보라. 

          

           

[에필로그] 

"돈은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것이 돈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다.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습관, 라이프 스타일, 취미와 취향등을 모두 알 수 있다.

즉, 돈이란 개인의 사고와 행동의 결과과 그대로 드러난 산물이며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금을 많이하는 사람->자기 관리 능력이 높다

음반에 돈을 많이 쓰는 사람 -> 음악을 특히 좋아하며 취미 생활을 중시한다.

높은 수익을 얻는 사람->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 닦으며 열심히 노력해왔다. 

그저 돈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대신, 먼저 우리가 돈과 어울리는 방식을 돌아봐야한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돈의 크기가 있다 "

이 말은 먼저 자신의 그릇을 키워야 그에 맞는 돈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그릇이 작으면 큰돈이 들어와도 결국 모조리 흘러나가게 된다.

 

"돈을 가져오는 건 반드시 '자신'이 아닌 '다른사람'이다."

우리의 그릇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이다. 즉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그릇보다 큰 기회가 오지 않는다. 

 

"실패란 결단을 내린 사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입이나 돈이 크게 줄면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의 가치는 

잃어버린 돈 보다 훨씬 크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돈을 줄어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으로 

돈 걱정때문에 어떤 새로운 도전도 하지 못한다. 이들은 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며, 결국 

돈 때문에 가정이나 사랑, 우정 등 돈보다 중요한 가치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된다. 

이 지배에서 벋어나기 위해서는 돈의 본질을 알아야한다.

 

"돈이란, 신용을 가시화한 것이다" 

신용은 지난 행동들의 결과이고, 지난 행동은 하루하루 사고해 온 결과다. 

 

 

[ Profile ] 일본의 경제금융 교육 전문가 

                 교육, IT, 부동산 사업과 관련 5개의 회사를 경영

                 '경제와 돈의 교양이 몸에 배는 머니 스쿨'을 모토로 경제신문 읽는 법, 머니 플랜,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 교육

             

[Organization/Company] 일본 파이낸셜아카데미 주식회사 대표 

                www.f-academi.jp  

            

[Publishing]  '부자의 그릇' 등 30권의 저서 집필 

                       '부자의 그릇' Fusha no Yuigon 富者の遺言

         :소설형식의 경제경영 교양서.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 내안의 부자의 그릇을 키우는 법을 알려줌 

                      『お金原論』(東洋経済新報社)、『お金の教養』(大和書房)、『仕組み仕事術』(ディスカヴァー・トゥエンティワン)

   

안녕하세요 북성입니다.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습니다. 

책을 읽으며 의미있었던 내용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기록하고,

책을 읽으며 떠오른 고민과 질문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조금씩 덧붙이는 작업을 하는 것, 

이것이 북성도 블로그의 주제입니다. 

 

독자를 위한 글은 아닙니다. 

저에게 필요한 내용, 그래서 새겨두고 싶은 내용, 그리고 떠오르는 사색과 사유을 솔직하게 풀어놓는 글일 뿐이오니

한 개인의 서재, 메모장 또는 독후감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따라서 댓글창은 없어도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모를 의미있는 소통의 창구를 마련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댓글창을 두기로 했습니다. 다만 의미없는 스팸 댓글은 바로 바로 삭제하고 있으며, 좋은 책에 대한 소개나 서로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댓글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 _ 박우란 

 

 

타자의 욕망으로 사는 것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내가 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게 필요한 사람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어떻게 타인을 경유하지 않고, 나 스스로를 실현하고 만족시키는 사랑을 할 것인가?

 

[ 나에게 몰두하는 힘 ]

내적 불안이 높고, 불만족에 사로잡히다 보면, 에너지가 자꾸 내 안이 아닌 외부로 향한다.

외부의 조건을 개선하면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끊임없이 생각하여, 외부의 조건을 제거하거나 개선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외부의 조건에 사로잡히는 나의 에너지는 그저 내가 나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과 대면하지 않기 위한 알리바이 중 하나이다. 

 

외적인 환경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만약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이라면, 스스로 나약하거나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 안의 어린아이가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 일 수 있다. 마치 엄마가 없다는 생각만으로 절망하고 공포에 휩싸이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러나 성인인 지금의 내가 많은 부분 상상으로 만들어낸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계속 떨며 불안해할 필요가 있을까? 가보지 않은 길,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것에 대한 발디딤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두렵게 하지만, 막상 발을 디디면 걸어갈 만한 것이 대부분이다. 모호하고 불투명한 상태로 나를 밀어 넣는 일은 무모해 보이지만 내 삶을 온전히 새롭게 만드는데 반드시 거쳐야 할 통로와 같다. 모호함은 안정의 반대에서 오는 불안과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가능성에도 열려있는 상태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되돌리는 것은 에너지를 내부로 향하게 만드는 노력이다. 

외부의 문제를 그냥 두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왜 과감하게 선택하지 못하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봐라.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서있다면 왜 그곳에 서있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질문해봐라. 

 

[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와 수용 ]

상담을 통해 고통이나 상처의 원인을 알기 위해 과거를 탐색하는 것은 사실상 애도에 해당한다.

그러나 애도 만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애도를 넘어, 즉 원인을 알아차린 후에는 그 원인을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수용하느냐에 따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여 의연하게 임하는 사람은 오만한 운명을 자신의 발아래 두고서 행운과 불운에 굴하지 않고 운명을 직시하며 태연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다 -보에티우스-

 

삶에서 일어나는 반복, 즉 운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한다면 삶을 가볍게 만들고 즐길 수 있는 차원으로 끌고 나갈 수 있다. 

불행이라고 여기는 상태나 현상도 수용하기에 따라 더이상 불행이 아닌 주체적인 삶의 열정이 될 수 있다. 

 

자녀문제, 배우자 문제로 고통받을 때, 여성은 인정과 승인, 애정에 매어 같은 갈등을 반복하면서도 자신을 혐오스러워하고 끔찍하게 여긴다. 이런 애증으로부터 처연히 떨치고 나와 오직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선택도 훌륭하지만, 나에게 불행을 주고 고통을 주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위대한 용기에 해당한다.

파도가 올 것을 알고 도망가거나 끌려다니지 않고, 파도가 오는 것을 보면서 그 위에 올라타는 것. 이것이 수용이다. 

 

 

[절대적 신뢰 그 요원한 소망]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어떤 모습이어도 나를 저버리지 않는' 절대적인 신뢰는,  아이가 부모로부터 안전함과 절대적 자아를 보호받기를 원하는 욕망이다. 상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달라고 조르는 것은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싶다는 소망인데 이것은 건강한 친밀함이 아니다. 

즉 상대와 친밀함 과 애정으로 밀착될수록 요구와 욕망에 매몰되어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렵게 된다. 

결코 서로에게 온전히 채운 수 없는 구멍을 안은 채로 함께 가는 것이 진짜 신뢰일 것이다. 

 

내가 파트너를 선택할 때 가장 큰 기준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어떤 모습이어도 나를 저버리지 않는 상대.

내가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대. 지금껏 내가 사귀었던 상대들은 이런 조건에 의해서 선택되고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왜 이런 파트너들과 함께 하면서도 나는 외롭고 힘들었을까?

 

1. 이들과 함께 하며 의존과 안정에 대한 욕구는 채워졌지만, 나의 다른 욕구(자유롭게 세상을 탐험하고 싶은 욕구, 변화에 대한 욕구 등)들이 좌절되었다. 

2. 의존과 안정에 대한 욕구가 너무 컸던 나머지, 그 기준이 너무나도 절대적이 되어버려, 파트너를 선택할 때 살펴봐야할 조건들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 (생활 패턴, 습관, 공통의 취미나 관심거리, 가치관, 미래의 계획 등) 

3. 절대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에, 반대로 절대적으로 의지한 상대가 나의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오는 배신감,후회, 분노가 너무도 컸다.  

4. 반대로 더욱더 밀어내고 소외시키곤 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버리고 배신을 하기도 했다. 

5. 더 통제하고 더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서 상대가 나를 떠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는 무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소유와 통제의 욕망) 이것은 상대방을 의무에서 면제시키고, 내가 그 짐을 다 들고 모든 문제를 맡아 해결하는 패턴을 이끌었고, 결국 나는 지쳐 번아웃되었다. 

(약자의 위치에서 스스로를 헌신하고 희생시키며 고통을 경험하면서 소유와 통제의 쾌락을 경험)

 

아마도 어릴적 절대적인 신뢰, 절대적인 의존을 경험하지 못하여 이를 계속해서 갈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의 나에게도 필요한 욕구일까? 한참 성인인 나에게 절대적인 의존의 대상이 필요할까? 

이걸 버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가볍게 살면 어떨까? 

나에게 있어서, 절대적 의존이 더이상 파트너를 선택하는 최상위기준이 아니라면, 어떤 기준에 의해서 상대를 선택하고 어떤 사랑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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